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수업이 고급과정으로 치달을수록 한국인인 나는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문법이니 어휘니 하는 언어적인 영역에서 차츰 벗어나 자연스레 한국문화와 풍습, 한국사회의 보편적 가치관과 분위기, 그리고 드라마를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 설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골수’ 한국인인 내가 이제부터는 이들을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골수’ 중국인으로 만나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 태평양 건너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서로 판이한 사회 체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랑 수 천년 어깨를 맞대고 살아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특정 화제가 등장해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상호 우호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장을 전달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역사나 정치같은 골치 아픈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배제한 채 생활 문화의 범주에서 손쉬운 것부터 접근한다. 설날과 추석같은 주요 명절 쇠기부터 시작해 결혼식에서의 폐백이란 독특한 절차와 매장이란 장례풍속, 그리고 유교 전통의 제사를 거쳐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풍습 설명은 기본이다.
통상 거기에다 최근 유행하는 젊은이들 취향의 대중음악과 복식문제, 사회인으로서의 예의범절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면 대충 어지간히는 마무리되곤 한다. 여기서 더 나간댓자 청년실업이니 뭐니 하는 양국 공통의 사회적 화두 정도이고 거기서 더 나가면 사실 나도 감당이 어렵다,
한데 생일날의 미역국 대목에서 항상 내가 빼놓지 않고 역설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은 그들이 하고많은 국 중에서 왜 하필 미역국이냐고 궁금해하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일정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산후 조리를 위해 산모가 미역국을 장복하는 건 우리네로선 매우 보편적인 상식인데 그들로선 생소한 이국적인 풍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모가 조기 건강 회복을 위해 요오드(I)가 풍부하게 함유된 미역국을 먹으며, 생일날 우리는 1차적으로 어머니의 그날의 산고를 기억하고자, 그리고 2차적으로는 왜 어머니의 그 혹독한 산고를 치르며 우리가 각자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려 먹는다고 이야기해 준다. 이 대목에서 대체로는 숙연한 반응들이 온다. 그것은 국적을 떠나 모두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이렇게 설명은 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나의 내면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다. 우리는 과연 해마다 한 번씩 맞이하는 생일날 실제 그렇게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들 있기나 한 건지? 그저 습관적으로 미역국을 먹고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친구들 모여 케이크 자르며 생일 축가를 부르네 어쩌네 하는 형식만 쫓고 있을 뿐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숫제 지나쳐버리고 있지나 않는지? 벗들의 축가는 새 생명 탄생의 축하인 동시에 산고에 걸맞게 의미있는 삶을 살라는 격려이어야 할 텐데 진정 그러한 마음들을 담아 부르고나 있는지?
부모님들 생신 때도 마찬가지. 이러한 의미를 역방향으로 돌려 자식된 마음가짐을 새로이하는 계기로 삼고나 있는 것인지? 그저 의례적인 축하 인사나 선물 나부랭이로 때우며 자식된 도리를 다 한 양 연중 행사나 통과 의례로 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돌아서서는 자성과 자책의 마음이 불 일듯 하지만 한국 문화를 알리는 현장에서 이러쿵저러쿵 내색을 할 수는 없다. 그러려니 하며 들어주는 중국 학생들이 고마울 뿐이다. 한국어 선생 노릇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짚어 보는 계기를 가진 것만도 고맙다. 모쪼록 이런 의미를 잘 새기는 마음들로 꽉 찬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문교육이 무너져서 걱정이라는 한탄도 많고, 국제화 시대를 맞아 한류를 전파하네 고급 문화를 창달하네 하는 거창한 구호와 뉴스도 많이 접하고 있지만 미역국에 깃든 감사와 존재의 의미 그게 바로 고급 문화가 아니면 무엇이며, 그런 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잘 새기며 살아가노라면 적어도 가정에서만큼은 인문교육이 완전히 붕괴될 것까지는 없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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